0회차 :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
김남윤 씀
나는 어떤 철학을 하는가
일반적으로 철학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됩니다. ① 먼저 "생각한다"라는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이 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한다"고 외치는 속물적인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의 원리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선 넓은 의미로 철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이면 뭐든 다 한다는 마인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과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가치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물질적 소유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이러한 생각을 정리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지 않을뿐이죠. 따라서 넓은 의미의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가치관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철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② 이와 달리 한편으론 좁은 의미의 철학이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철학의 주된 활동은 철학자들이 남긴 사상과 글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글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했던 학자들이 과연 그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보통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 짬을 내서 하기보다는, 철학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이 도맡아 하는 것이 더 일반적입니다.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유학을 떠나 박사과정을 마친 후 국내에 돌아와 철학 강의와 글쓰기를 하며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철학자가 되는 것이죠.
철학의 넓은 정의와 좁은 의미를 놓고 생각해봤을 때, 제가 하는 철학은 ②보다는 ①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선 한국에서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상이나 특정 문제들에 관해 공부하기에는, 철학의 관심사가 너무 자주 바뀌었거든요. (물론 시간과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큽니다) 뭣도 모르던 고등학생 때는 하이데거를 좋아했다가, 입학 후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전역 후에는 니체와 베르그송에 관심이 있었고, 지금은 인식론과 심리철학이 재밌어 보입니다. 보통 영화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좋아하는 영화감독 한 명 꼽아보라고 하면 너무 난감해하죠. 이창동도 좋고 쿠엔틴 타란티노도 좋거든요. 제겐 철학이 이렇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는 철학계의 일원은 아닙니다. 하지만 ①과 ②의 중간 정도의 의미로는 꾸준히 철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먼저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의 글을 읽으며, 삶의 의미를 꾸준히 생각해보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
농구와 같은 종류의 스포츠는 큰 키와 같은 신체적 특징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군대나 교회 같은 곳에서는 집단생활에 좀 더 익숙한 사람이 쉽게 적응할 수 있을 테고요. 그렇다면 철학자가 되기 위해, 혹은 철학을 잘하기 위해 특별히 요구되는 자질이 따로 있을까요?
우선 기본적으로 철학은 사유를 한다는 점에서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생각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하나의 문제를 놓고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며, 오류가 없을 때까지 의심을 거듭하는 일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사색의 과정이 단 몇십초 안에 끝날 리는 없겠죠. 유튜브 쇼츠로 나노 단위의 삶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현시대에 철학은 어쩌면 너무 아날로그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철학은 그 특성상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은 남이 대신 해줄 수도 없고, 자기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본다면 역사상 유명했던 철학자들은 모두 MBTI가 IN으로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파티에서 놀고 1년 365일 사람들 만나고 다니면 혼자서 조용히 철학할 시간은 조금도 없었을 테니까요.
기본적인 독해능력도 철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인 것 같습니다. 전시회나 영화감상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언어를 통해 사유된 결과물인 책을 읽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자(철학자)가 쓴 문장이 자신의 주장인지, 아니면 상대를 비판하는 것인지, 혹은 그저 조롱하기 위해 비유를 든 것인지 등은 기본적으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용법과 다른 방식으로 쓰이는 철학 개념들은 하나씩 찾아가며 공부하면 그만이지만, 그와 같은 개념들이 쌓인 문장 더미들은 기본적인 읽기가 안 되면 영영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외국어 능력은 필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라면 철학을 공부하는 데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철학자의 글이나 번역되지 않은 저작물의 상당수가 영어로는 이미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터넷에선 철학 관련 논문을 비롯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영문으로 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철학에서만 특수하게 사용되는 개념들과 용어들을 영어로 공부하고 나면, 평이한 수준의 철학책을 영어 원서로 읽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더 깊이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면 영어 → 독일어/프랑스어 → 라틴어 → 헬라어(고대 그리스어) 순으로 외국어를 배워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학습 난이도는 높아집니다. 물론 이 모든 언어를 마스터할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타고난 다중언어 구사자가 아닌 이상, 모든 외국어에 통달할 이유도, 시간과 여유는 더더욱 없으니까요. 저 역시 국내에 소개된 번역본에 의지합니다. 하지만 주요 철학 개념의 어원과 형성과정 정도는 공부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번역어로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뉘앙스와 본래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거든요.
이외에도 철학을 하기 위해선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과 언제든지 생각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열린 자세와 관용이 필요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만이 진리이고 결점과 오류가 하나도 없다고 너무 진지하게 믿어버리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기본적인 소통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모두 골방에 틀어박혀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데에 생을 바쳤을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은 모두 토론의 대가들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옳다고 믿는 것들이 비판받을수록, 오히려 내가 파고드는 사상은 더욱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철학은 어디까지나 이성과 말로 하는 싸움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토론에서 우리는 사유의 풍성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철학자를 덕질할 수 있을까?
철학을 한다고 하면 으레 듣는 얘기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있냐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제게 이 질문은 조금 흥미롭습니다. 좋아하는 특정 철학사조가 아니라, 철학자 한 사람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는 우리가 은연중에 한 사람의 생애와 그의 사상을 동일한 무게로 인식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극장이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영화 포스터와 줄거리를 보고 영화를 고르지, 감독의 성장배경이나 가치관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는 것처럼, 철학 역시 사상을 먼저 접하고 그 후에 철학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한 사람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의 특징을 공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물리적 환경(재미있는 일화를 포함해서) 자체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칸트가 생전에 가터벨트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그의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저 이야기는 한국 인터넷에만 떠도는 낭설입니다.)
이런 점에서 철학자 덕질은 아이돌 덕질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내 최애의 신보는 물론이고, 최애의 취향이나 취미, 심지어는 학창 시절 일화나 가족관계까지 속속들이 파악하는 수준의 덕질은 철학에선 잘 없는 듯합니다. 하다못해 아이돌은 앨범이나 포토카드 같은 굿즈라도 나오는데, 철학자는 마땅히 덕질할 거리도 없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좋아하는 사상가가 쓴 책을 직접 사서 읽는 것인데, 대부분 유명한 철학자는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이 더 많아서, 책을 사주는 게 저자에게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철학자 덕질은 반복되는 독서와 끝없는 연구라는 점에서 아이돌보다는 2D 애니메이션 캐릭터 덕질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같은 내용의 만화를 끝없이 반복해서 보는 건 덕질의 기본입니다. 수많은 논문과 책에 관한 책들은 내가 좋아하는 최애캐를 가지고 만든 2차 창작과 비슷하고요. 애니메이션 팬들이 종종 캐릭터들의 관계 설정이나 떡밥 등을 가지고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을 보면, 같은 철학자를 두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나 학파들이 떠오릅니다. 마치 철학자 팬덤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요.
혹시 또 모릅니다. 언젠가 역사 속 철학자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가 나와서 굿즈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데카르트 파우치나 니체 키링이 나온다면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철학 팝업스토어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때까진 양질의 번역서를 사서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나는 왜 철학을 하는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는 질문만큼이나 제게 난감한 물음은 "왜 철학을 하느냐"입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저의 답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드물지만, 짓궂은 표정과 제스처로(악의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습니다), "철학 왜 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빤합니다. 먹고 사는데 도움이 안되는 그까짓 철학, 해서 뭐하냐는 거겠지요.
솔직히 말해서 이 질문에 달리 할말은 없습니다. 전공자로서 생각하기에, 순전히 돈을 벌 목적이라면 21세기에 철학을 업으로 삼는 것이 그리 효율적인 일은 분명 아닙니다. 차라리 코딩을 배우는 게 훨씬 낫겠지요. 철학책을 읽는다고 당장 요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발명품을 만들어 특허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생각, 그중에서도 추상적인 사고를 다루고 있고, 이 과정은 행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 순간만큼은 행동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선 철학이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실용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철학을 왜 하는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호기심을 갖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게는 앞서 제가 이야기했던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를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생각하는 동안에는 행동하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은 생각을 토대로 이루어진다고요. 우리가 무슨 생각하고 믿는지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결정됩니다. 히틀러와 나치는 우생학과 반유대주의를 진실로 믿었고, 이를 그대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비참한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이처럼 20세기에 등장한 수많은 독재국가들은 전체를 위한 개인의 무조건적 희생을 요구하는 사상을 정당화했습니다. 누군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거나 아무도 그것을 진지하게 믿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던 것이죠.
이처럼 독재를 옹호하는 사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합리적 진보와 체계를 믿는 사람과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믿는 사람이 생각하는 세계의 모습 역시 다를 것입니다. 도덕을 가르칠 수 있다는 사람과 인간의 타고난 도덕적 본성은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만드는 교육체계는 극명한 차이를 보일 거고요.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예시들은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지 그 기준이 되는 생각을 서로 비교해보고 평가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철학은 언뜻 보기에 뜬구름 잡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당장 밥벌이가 안되는데)"철학 왜 해요?"라는 질문에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좀 더 현명한 선택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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