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구독자분들도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른들께서 고전을 많이 읽어보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게다가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에서도 필독서로 고전을 추천합니다. 좋든 싫든 살면서 고전 몇 권은 읽어야 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들 고전이 중요하다고는 하는데, 정작 고전의 정의가 뭐냐고 물어보면 명확한 기준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고전 아닌가요?”와 같은 질문은 단순한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로 무엇이 우리가 읽어야 할 고전인지에 관한 진지한 문제 제기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고전이 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할까요? 먼저 고전의 조건으로 집필 시기 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 쓰인 책을 고전이라 칭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조건은 고전의 본질적 정의로는 다소 미흡해 보입니다. 단순히 오래전에 쓰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 인류 역사 속 수많은 비석문과 각종 서사시, 신화가 기록된 책들이 모두 고전이 되었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길가메시 서사시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상학』보다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더 중요한 고전으로 꼽습니다. 이처럼 단지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고전과 고전 아닌 책을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그럼 오랜 기간 많이 읽히고 팔린 책이 라는 조건은 어떨까요? 이런 정의는 분명 어느 정도는 고전의 정의로 그럴듯해 보입니다. 실제로 고전문학이나 철학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은 짧게는 50년, 길게는 2,000년도 더 전에 쓰인 책들입니다. 누적 판매량으로 치면 분명 이 책들은 많이 팔렸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마저도 만족스러운 고전의 정의는 아닌 듯합니다. 순전히 누적 판매량을 생각한다면 아무래고 고전보다는 자기계발서나 수험서 같은 실용서가 훨씬 더 많이 팔리기 때문이죠. 또 전 세계적으로는 많이 팔렸지만,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주로 통속소설이나 장르 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종류의 책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도 되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만들어지지만 선뜻 고전으로 분류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형식적 조건보다는 내용적 차원에서 고전의 정의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전이 고전이 된 이유를 형식이 아닌 내용에서 찾는 것이죠. 저의 잠정적인 결론이자 애독가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고전의 정의는 “시공간의 특수성을 뛰어넘는 질문을 통해, 인류로 하여금 보편적 가치를 고민해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누군가의 고민이 단지 그 시대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보편적 물음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고전으로 남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고전을 읽으며 무릎을 탁하고 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에 비교적 최근의 책보다는 고전을 더 많이 즐겨 읽는 편입니다. 고전은 마치 맛집들의 원조와도 같습니다. 최초의 개념, 최초의 논증, 처음으로 등장한 단어 등 사상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고전에는 가득합니다. 고전에는 후대의 사상가들이 비판하거나 왜곡 또는 오해한 내용들이 때 묻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놓쳐버린 사상가의 독특한 면모를 고전에서 발견할 때면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것 마냥 짜릿합니다. 사상의 측면에서 고전에 관해서라면 무지가 정말로 악덕이 됩니다. 내가 새롭게 만든 사상이라고 으스대던 사람들이 얼마나 책(고전)을 안 읽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저는 무조건 고전의 우월성을 찬미하는 고전주의자는 또 아닙니다. 고전에는 그 장점만큼이나 단점과 한계도 명확하기 때문이죠. 고전에는 분명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던지는 보편적 질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고전이 시공간적으로 특수한 환경에서 쓰였다는 점 역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그 자체로 훌륭한 책이지만, AI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는 말해주는 바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공지능과 빅테크 기업이 없었으니까요.
또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모두 좋은 책인 건 아닙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명성과 달리 막상 읽었을 때 머리 위에 물음표가 가득 올라오는 책들도 적지 않거든요. 이런 책들을 보면 사실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대체 이게 왜 고전이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위대한 명저를 이해할 만큼 내가 똑똑하지는 않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책이 단지 과대평가되었을 가능성입니다. 특수한 사회적 맥락과 사상의 흐름 속에서 어떤 책은 더 많이 주목을 받고 어떤 책은 외면당하게 됩니다. 책의 퀄리티(사상적 독창성과 문체 등)을 기준으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으나, 종종 당대의 특수한 사정(당시 유행하던 사조, 학계 또는 독자가 속한 공동체의 분위기 등) 때문에 희비가 엇갈린 책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고전 읽기는 철학을 공부하고 교양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고전 읽기만이 능사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도 중요하지만, 시대와 지역의 특수한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서 고전에 담긴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또한 고전이라고 아무 책이나 마구잡이로 읽는 게 아니라, 주제별로 의미 있는 책들을 선별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달리 말해, 고전을 위한 고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 공부를 시작하는 데에 있어 고전만큼 좋은 도구는 없습니다. 고전, 그중에서도 특히 철학 고전은 철학 개념과 배경지식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없어도 얼마든지 교양서로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플라톤의 『향연』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같은 책들은 적당한 흥미 유발과 교훈적 가치를 모두 담고 있어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 매우 적합한 철학 고전입니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좋은 고전을 가려내어 읽는 데에는 그만큼의 독서와 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느 고전이 내게 의미 있는 통찰을 주는지 알아보려면 그만큼 많은 책들을 읽어봐야 하겠죠. |